계절의 기억
11월 : 고등어
“한국인의 밥상에 고등어가 빠질 수 있습니까!”
몇 년이 지났지만 전화기 너머 호탕히 울리던 수협장님의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합니다.
이 계절, 고등어를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방법은 제주의 바다로 나서는 것, 욕지도의 양식장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부산의 공동어시장을 찾는 것 아닐까 싶은데요. 공동어시장은 일반인이 들락대기 쉽지 않은 어시장인터라 수협장님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더욱 기분이 좋아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을 깨우는 어시장의 활기는 대한민국 어느 어시장이나 마찬가지지만 부산 공동어시장의 새벽은 남다릅니다. 일단 어마어마한 규모에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것은 기본,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수많은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제주 앞바다에서 고등어를 실은 운반선이 돌아오면 어시장의 밤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마치 고등어가 하늘에서 쏟아지듯, 텅 비었던 바닥이 순식간에 은빛으로 빛나는 푸른 고등어로 가득해지고 신선함을 잃기 전에 분류 작업을 마쳐야 하는 사람들의 손은 분주하기만 합니다.
선명한 청색의 얼룩무늬, 반짝이는 은백색의 배, 선명한 눈동자
어쩌면 조금 날렵해 보이는 이 녀석들이 우리 바다를 누비는 참고등어입니다.

100톤이 넘는 대형선망어선에서 쉴 새 없이 생선이 쏟아지고 고등어와 같은 어망에 들었던 방어, 삼치, 풀치, 오징어 등이 같은 것들 또한 가지런히 줄을 세우고 몸값을 매길 준비에 들어갑니다. 새벽 5시,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경매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지면 눈 여겨 본 고등어를 차지하기 위한 조용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우리나라 제주 연안에서 잡히는 고등어는 대부분 참고등어입니다.
간혹 망치고등어(점고등어)도 보이지만 찬바람이 부는 9월부터 2월까지 잡히는 참고등어를 으뜸으로 친다지요. 노르웨이 연안에서 잡히는 대서양고등어보다 몸집이 날렵하고 무늬가 자잘하며 배의 색이 더 은빛을 띕니다.
취향도 입맛도 가지각색이니 무엇이 으뜸이다 말 할 수는 없지만 가을에 만나는 참고등어는 적당히 기름지면서도 담백한 맛이 좋아 회로 먹기 그만입니다. 묵직하고 풍부한 맛이 좋은 대서양 고등어는 구이로 먹었을 때 좀더 부드러운 맛을 가집니다. 특히 적당히 기름을 빼고 구운 석쇠구이는 대서양 고등어를 먹기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등어 분류 작업을 마치고 퇴근하시는 어머니들을 따라 감천마을을 찾았습니다.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고등어회, 물회, 구이, 조림, 찌개, 추탕… 웬만한 고등어 음식은 다 접해 보았을 터,
5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어시장 근처를 떠나본 적 없는 분들이라시니 흔히 알고 있는 고등어 음식이 아닌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었던 기억입니다.


그날 만났던 고등어 음식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건고등어찜입니다. 입안을 꽉 채운 비릿한 맛에 쫀득한 식감을 잊을 수가 없는데요. 배에서 말려 맛보여 주셨던 그 맛과 비교할 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인터넷에서도 심심찮게 구할 수 있다니 저도 조만간 구입을 해야겠습니다.

탁주 한잔에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고등어 한 손 손에 들고 계단을 오르는 아버지의 모습, 새벽 작업을 마치고 왁자지껄 모여 아침밥에 소주 한 잔 기울이던 공동어시장 분들의 모습, 손님이 찾아왔다고 고등어 탕탕 다져 국 끓여 주시던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조만간 그리운 비린내의 추억을 좇아 고등어를 만나러, 어시장의 그분들을 만나러 부산엘 가야겠습니다.
#식재료탐구생활 #고등어 #미식가노트 #식탁위의지속가능성

음식탐험가 장민영